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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점, 펼쳐진 궤적 

 

    ARTNOW 2026.04.22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 일우스페이스에서 5월 1일 개막하는 이성미 작가의 개인전. 완성으로 향하는 숨결을 따라 ‘완성이전의 풍경’을 미리 마주한다. 

​                                                                                                                                                                                                     정희윤 | 노블레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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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를 준비 중인 이성미 작가의 작업실 풍경. 

 매체와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가로지르며 빛과 유리, 그리고 기억의 층위를 탐구해온 이성미 작가가 20여년간 축적해온 작업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펼쳐 보인다. 맹지영 큐레이터가 기획에 참여한 이번 전시는 작품이태동하고 변화해온 ‘과정의 풍경’과 그 안의 과거와 현재 작업들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필연적 흐름을완성해가는 서사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2007년 뉴욕 브루클린 스튜디오에서부터“특정 매체에 경계를 두지 않고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태도, 그리고 재료에 대한 집요한 연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작업의 단단한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고 맹지영 큐레이터는 회상한다. 응집과 해체, 투명과반투명을 오가며 균열되고 부서졌다가 다시 생성되는 일련의 흐름은 단순한 제작 공정을 넘어 작가의 삶과작업이 정직하게 맞물려 축적된 시간의 기록이었다. 165평에 달하는 일우스페이스의 광활한 전시장 내부에는최근 진행 중인 신작 패널 작업과 그동안 한 번도 세상에 나오지 않은 미공개 드로잉, 그리고 과거의 조각과설치 작품이 시간의 단면처럼 병치되며, 선형적 연대기를 따르기보다는 작품 간 유기적 연결 구조를 이룬다.이는 흩어져 있던 과거의 점들이 서로를 비추며 비로소 하나의 지도를 그려내는 과정과도 같다. 이성미의조형적 뿌리는 학부 시절 전공한 회화와도 닿아 있기에, 작가에게 드로잉은 늘 작업의 심장이자 설계도였으며,평면과 입체의 경계는 무의미한 구분이었다. “드로잉은 항상 작품의 일부였고, 단지 공개하지 않았을 뿐수없이 존재해왔다”는 작가의 말은 이번 전시가 왜 그의 가장 순수한 핵심을 보여주는지 짐작케 한다. 실제로2024년 개인전 〈Blue Hour〉에서 시그너처와 같던 유리 작업을 과감히 배제한 선택은 이러한 본질적흐름으로 회귀하기 위한 두렵지만 자유로운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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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클라우드나인)’ 작품의 스테인리스 프레임 전개도. 

마주한 표면 너머

그 변화는 작업 태도에서 가장 선명하게 포착된다. 과거의 작업이 재료를 철저히 통제하고 매끄럽게 연마해완벽한 표면을 만들어내는 수행에 가까웠다면, 최근 작업은 물성과 그 과정이 이끄는 우연의 힘에 스스로를맡기는 상태에 도달했다. 한때 공을 들인 매끄러운 유리 표면은 단순한 심미적 선택이 아니라, 깨진 파편을이어 붙이며 상처를 보듬고 자신을 치유한 수행적 기록이었다. 가장 오랜 시간 곁에서 작가의 작업을 봐온맹지영 큐레이터는 이 시기를 매끄러운 표면에 대한 강박의 시간으로 기억하면서도, 동시에 재료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가 축적된 시기였다고 짚는다. 그의 시선에 따르면, 이제 작가는 과거의 집요한 강박에서 한 걸음물러나 새로운 지점에 서 있다. 수행적 연마를 통해 삶의 파편들을 매끄럽게 다듬어내던 단계에서 나아가,이제는 삶과 재료가 지닌 본연의 울퉁불퉁한 굴곡과 그 이면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바라보기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패널 드로잉 작업은 이런 유연한 변화를 실천하는 실험의 장이다. 작가는흑연과 목탄 가루, 안료, 구아슈, 실리콘 액체에 이르기까지 이질적 재료들을 다채롭게 변주하며 화면 위에겹겹이 층위를 쌓아 올린다. 때로 알코올에 흑연 가루를 개어 물처럼 흘릴 때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번짐이나,젤미디엄과 바니시가 겹치며 만들어내는 투명한 깊이감은 작가가 의도한 설계를 넘어선다. ‘해피 액시던트(Happy Accident)’를 비롯한 안료의 번짐과 물성의 우연, 레이어의 겹침을 억누르지 않고 수용하는 흐름속에서 작가는 “이제는 통제하려 하지 않고, 과정을 믿고 맡긴다”고 고백한다. 하중과 재료의 영향을 받는캔버스 천 대신 나무 패널을 택한 이유도 실험의 폭을 제한 없이 확장하기 위함이다. 작가는 “작업이 어디로갈지 규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방향을 제한하지 않는 베이스가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하나의 재료를 짧게는1년, 길게는 수년을 지속적으로 다루고 관찰하는 작가에게 모든 작업 여정은 재료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그미지의 자유로움 속에서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확장된다. ‘덩어리 드로잉’ 작업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조각위에 드로잉하며 안료를 뿌리고 은박을 덮은 뒤 긁어내고 다시 덧입히는 반복 속에서 회화와 조각의 경계는흐려지고, ‘그리기’와 ‘지우기’의 층위가 쌓인 표면은 축적된 시간의 단면이 된다. 이전 작업이 작가에 의한철저한 통제가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재료가 스스로를 드러내며 작가를 이끌어가는 ‘수용의 미학’이 그자리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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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지영 큐레이터와 이성미 작가. 

다시 만난 흔적

이런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이정표이자 이번 전시의 출발점으로 2006년 MoMA PS1에서 선보인 향 작업‘Untitled #600’을 제시한다. 향의 그을음이 남긴 흔적은 통제하려 하지만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물성앞에서 작가가 선택한 태도의 초기 실험이었다. 작업은 섬세한 과정을 통해 비운 공간에서 작가 홀로 향이 타며남기는 흔적을 묵묵히 기다리는 시간으로 이뤄진다. 공기의 흐름과 습도, 찰나의 움직임까지 그대로 표면에기록되며, 작가는 개입을 최소화한 채 그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오로지 시간과 공기, 호흡에 모든 것을맡긴 결과물인 셈이다. 당시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반투명하게 인식되던 자신의 정체성과 어릴 적절과 제사의 기억, 수행적 정서가 재료와 맞물리고, 바쁘고 빠르게 흘러가는 작업 시간과 느리게 흐르는 시간사이의 균형을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전시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작업의 흐름을 다시 읽는 장으로, 맹지영큐레이터는 이를 ‘커넥팅 더 도츠(connecting the dots)’에 비유한다. 과거 작업을 펼쳐놓고 그 사이의 연결지점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것. 작가 역시 이 흐름 속에서 무의식적 연속성을 확인했다. 2019년의 드로잉과최근 설치 작업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음을 발견한 순간, 작업은 시간 속에서 이미 스스로를 연결하며진행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개인전이 신작 중심으로 구성되는 흐름 속에서, 과거 작업을 함께 조명하는 이번전시는 작가에게도 남다른 의미다. 작가는 이에 대해 “설레면서도 무섭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작업을 동시에마주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예전 작업이 한국에서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기에 이번에는 그 시간을 연결해 보여주고 싶다”라며 기대감을 전했다. 계속되는 작업 여정 속 자신의 궤적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 그리고앞으로 펼쳐질 가능성. 그 모든 것을 동시에 마주하는 기대의 순간이다.

​ 아트나우(Artnow)issue 5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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